예저우 | 오렌지연필 | 2019.03.22
<쇼펜하우어, 딱 좋은 고독>이라는 책을 반항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긍정의 힘을 신봉해왔던 나에게 고독을 즐기며 비관적인 생각으로 사고하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마치 내 삶에 도전장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서점에 들려 이 책과 마주할 당시에 한국은 한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가 격리’라는 평소에 들어보지도 못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로 경계와 불신을 넘나들며 서로가 분리되는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 또한 격리 생활 14일을 겪다 보니 고독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던 점도 보태진 듯하다. 

쇼펜하우어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랐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의 냉대로 인한 고통은 쇼펜하우어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해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분리시켰으며 고독이라는 방에 갇혀 비관주의 사상을 형성해 가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그의 인생을 우려내어 만들어 낸 진한 인생 성찰의 고갱이를 소개하고 있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홀로 씨름하며 발굴해 낸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이 책의 주메뉴라면 사이드메뉴로는 예저우라는 중국 작가가 쇼펜하우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야기 한 것이고 맛깔스런 소스로는 철학적 논리를 뒷받침 해주는 중국 현인들의 사상도 나와있다. 
  
비관주의자라는 말에 나와 다른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읽어 나갔지만 이 책은 나의 다른 한편의 마음을 열어 주었다. 결국엔 인생을 대하는 숭고한 정신은 같고 살아가는 방식만 다를 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 
  
아무리 낙관 주의자라 해도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며 살아간다. ‘사람의 일생이란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다’라고 말한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제라면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할 것 같다. 적어도 회피나 방관이 되지는 않도록 말이다. 

범속을 초월한 상태에서 묵묵히 정신적 경지를 고수하는 것, 고독이 찾아왔을 때 자신을 변화시킬 방법을 익히며 고독을 향유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성장시킨다면 우리의 삶이 한 자락도 버릴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코로나라는 걸림돌이 들어와 시간을 멈추고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지만 이 고통 또한 우리를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발판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는 것처럼….

은명주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