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축이야기 ⑤
역사를 담고 있는 상하이의 건축물

내가 살고 있는 상하이는 규모로 보나, 역사로 보나 의심할 수 없는 세계적인 대도시이며, 그 명성에 걸 맞는 각양 각색의 건축물들을 품고 있다. 상하이의 스카이라인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황푸강 한편의 뤼자쭈이에는 화려한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이 현대 상하이의 경제력을 뽐내며, 다른 한편의 와이탄에는 유럽풍의 건축물들이 개항 이후 상하이의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상하이의 근현대 건축물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배경이 되는 상하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상하이는 도시 건설이 송대 이래로 전통적 경제활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 현성 지역과, 개항 후 만들어진 조계지 지역, 상하이특별시의 대상하이 계획으로 만들어진 지역, 그리고 1990년대에 개발된 푸동 지역으로 다른 시대적 배경이 각각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 반영된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향기를 품고 있는 상하이의 도시개발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과거에도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 현성(县城)

송대 이래로 경제 활동의 중심지로 부유했던 상하이현은 해적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명나라 때이던 1553년 현을 둘러싼 성을 축조하면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강남 수로 교통의 요충지가 됐다. 하지만 개항 이후 조계지로 둘러 쌓이게 되고 중국 관할 지역인 화계 지역과 분리가 되면서 위축되고 낙후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05년 상하이성향내외총공정국(城鄕内外总工程局)을 세워 도시를 개선하려 했으나, 조계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양세력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성의 성벽은 신해혁명 직후인 1912년에 철거돼 중화로와 민국로로 이름 지은 도로로 바뀌었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이후 민국로는 인민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에는 예원과 상하이성황묘 정도가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항 이후 만들어진 서양식 신도시: 조계지

1842년 남경조약을 맺고 이듬해 개항된 이후 상해는 무역도시로 상업과 금융이 발달하게 되고, 1895년 청일전쟁 이후에는 외국의 자본에 의한 공업도 발달하게 되었다. 유럽의 도시가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파괴되고 피폐해지고, 미국의 도시들이 경제난으로 힘들어하던 20세기 초 상하이는 나 홀로 발전하여 세계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조계지의 건설은 중국의 화양별거의 정책에 의해, 화계와 지역적으로 분리된 곳에 건설이 되었다. 1845년에 영국조계지가 건설되고, 1848년에 미국조계지가, 1849년에 프랑스조계지가 건설되는데, 1861년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난 이후 영국과 미국 조계지가 공공조계지로 합병되게 되었다.

조계지는 크게 금융-상업지역, 소비-문화-오락지역, 주거지역, 공업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금융-상업지역은 난징루와 와이탄을 중심으로 조성이 되었는데, 영국인들이 난징조약을 기념하여 이름 붙인 난징루는 최대의 상업지역으로, 4대백화점으로 불렸던 선시(현 상하이시장공사), 영안(현 영안백화점), 신신(현 제일식품상점), 대신(현 제일백화점)을 비롯한 여러 상업시설들로 구성되어있다.

지금의 푸저우루를 중심으로는 소비-문화-오락지역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대세계, 신세계 같은 소비, 오락, 여가 공간이 세워졌으며,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경마장도 조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인민공원과 인민광장으로 바뀌어 있고, 레이스클럽 건물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공공조계 서구, 홍커우, 프랑스조계지 서구를 중심으로 한 고급 주거지가, 마지막으로 조계지역 외곽으로 화계 지역과 근접한 양수푸, 홍커우를 중심으로 한 공업지역이 건설되었다.

한마디로 조계지는 서구 세력에게 제공된 빈 공간에 오직 서구 세력에 의해 계획되고 건설된 신도시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완성되지 못한 대상하이계획: 상하이 특별시         

1927년 국민당정부는 중국민 주도의 통합도시를 건설하고자 대상하이계획을 세우고 강만을 중심으로 조계지를 제외한 지역과 장쑤성 관할이던 상하이현과 바오산현을 합친 지역을 개발하기로 한다. 도로망의 구축과 우쑹의 신항만, 난징과 항저우와의 철도 연결을 포함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으나, 일본과의 전쟁(1, 2차 상하이사변)으로 인해 여러 번 중단되어 완성되지 못한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상하이특별시정부청사(현 상하이체육학원 행정건물), 상하이시도서관(현 양푸취도서관), 강만체육장 등이 있다.
 
탈조계지 도시개발의 완성: 푸동개발

 


외세의 침략으로 좌절되었던 중국민 주도의 탈조계지 도시개발은 1990년 푸동신구의 건설로 완성되게 된다. 예전 상하이 사람들의 말로 푸시에 침대하나 있는 것이 푸동의 집한채 가진 것 보다 낫다(宁要浦西一张床,不要浦东一间房)는 말이 있을 정도로 푸동과 푸시의 차이는 엄청났지만, 푸동 개발로 인해 상하이의 새로운 경제와 부의 중심이 생기게 되었다. 동방명주, 상하이타워, 상하이세계 금융센터, 진마오 타워 등으로 이루어진 스카이라인은 현대 상하이의 대표적 이미지로 꼽힌다. 푸동의 개발은 외세에 의해 건설된 조계지역 중심의 도시라는 상해의 공간적 역사배경적 한계를 중국인의 힘으로 극복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상하이는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상하이 도시 건축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상하이라는 도시에 세워진 여러 건축물들에 숨겨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기자 손제희(콩코디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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