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워커 | 문학동네 | 2020년 3월


미국 흑인 여성작가인 앨리스 워커의 1982년 작 소설이며, 1930년대 미국 남부에 사는 흑인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다. 오래전 출간될 당시 워낙 화제작이었고, 흑인 노예의 삶을 다룬 장편 TV 드라마 “뿌리”의 영향으로 내게도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으나, 소설 초반부터 시작되는 성폭력과 19금적 묘사들 때문에 책 읽기를 중단하고 그 후에도 상영된 영화마저도 외면했었다. 그런데 최근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고 보니 나의 몇몇 아프리카계 미국인 친구들이 떠올라 다시 읽게 되었다.

강인한 여성의 삶을 다룬 <토지>나 <대지> 등의 소설이 처음엔 연상되었으나 이 글의 주인공 씰리는 철저히 혼자이다. 그녀의 삶에 전환점이 되어 준 남편의 옛 애인의 따뜻한 도움이 간간이 있기는 하나 씰리는 의붓아버지의 성폭력으로 낳은 두 명의 자녀와도 생이별당하고 유일하게 의지가 되어 준 여동생과도 강제적 이별을 당한 채 외로운 삶을 이어 나간다. 

많은 인물이 오가고 상당수는 복잡한 결혼 관계로 얽혀있지만, 어떤 계기로든 맺어지고 헤어짐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 나름의 관계들을 이어 나가는 주인공 주변 인물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권 특히 흑인 인권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할 요소들도 많겠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삶이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한다. 물론 주인공의 생각 전체를 관통하는 종교적 색채는 어린 시절의 내가 읽었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부분이지만 이제 와 다른 시각에서 읽어보니 때로는 혼자 견뎌내야 하는 인생의 파도가 올 때라도 든든한 버팀목과 안식처가 있다는 것이 주인공에게도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인생을 시작은 비극이었으나 굴곡진 삶의 마지막 장은 보랏빛이다. 

‘‘우리가 보랏빛 일렁이는 어느 들판을 지나가면서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화가 날걸” 

힘들고 고단할 때 주변을 돌아보면 분명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 있다. 삶이란 그렇게 이어져 가는 것인가 보다. 나 또한 인생의 후반부로 방향을 틀어가는 시점에 서서 오늘도 끊임없이 이어질 크고 작은 순간의 선택들 앞에서 겸허하게 인생이 주는 무게를 조용히 받아들여야 하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소리 높여 인권을 외치지 않아도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묵묵히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 낸 이에게 주어진 선물은 "승리" 일 것이다.

이정연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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